[천자칼럼] K방산 수출 르네상스

입력 2024-02-07 17:53   수정 2024-02-08 00:27

1971년 초 북한에선 “수령님 환갑잔치를 서울에서 열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휴전선에 탱크를 집결시켰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 미군 2만 명이 철수하자 행동에 옮긴 것이다. 북한은 이미 탱크, 대포, 자동소총 등을 자체 생산하고 있었고, 군사력이 우리의 3배에 달했다. 반면 우리는 소총 하나 만들지 못했고, 탄약도 3주일 치뿐이었다. 자주국방을 뼈저리게 느낀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상공부 차관보를 제2경제수석에 임명하고, 예비군 20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오 수석은 “군대식 명령 하달이어서 거수경례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번개사업’이 시작됐고, 불과 한 달여 만에 소총, 기관총, 박격포, 로켓포가 만들어졌다. 1975년 미국 필리핀 등에 47만달러어치 소총 탄약을 팔았는데, 첫 방산 수출이었다. ‘미제 무기 복제’로 첫발을 뗀 K방산은 가속엔진을 달았다. 1970년대 중반 율곡사업으로 호위함을 건조했고 이후 전차, 장갑차, 자주포,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전투기, 첨단 미사일 등으로 꽃을 피워나갔다. 지난해 방산 수출은 2000년 5540만달러의 23배인 130억달러로 세계 9위에 올랐다.

최근에도 잇달아 ‘잭팟’을 터트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32억달러(약 4조2500억원) 규모의 천궁-Ⅱ 요격 미사일 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35억달러(약 4조6500억원) 계약에 이은 것으로, 주요 무기 시장인 중동에 수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폴란드에 전차, 자주포, FA-50 공격기 등의 수출을 시작했고, 호주와도 장갑차 계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방산 세계 4강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엔진·설계 등 첨단 분야는 미국 등 방산 강국에 비해 여전히 떨어진다. 출혈 경쟁과 고품질 개발을 막는 최저입찰제를 개선하고, 수출 상대국들의 절충교역 요구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도 시급하다. 기획에서 전력화까지 14년이 걸리는 ‘신속전력화’를 7년으로 당긴다고 하지만, 더 단축해야 한다. 방산 수출 보증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도 시급하다. 르네상스는 그저 오지 않는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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